2021년 07월 08일
[독서 감상] 아프리카인(L'Africain) - 르 클레지오
오랜만에 올리는 글은 독서 감상문.





사실 이 책을 시작한 게 작년 여름 휴가 때.
페이지 수도 얼마 안 되고, 중간중간에 사진도 들어가 있고 해서 진짜 금방 읽을 줄 알았는데
뭐가 그리 바빴는지, 읽다 말다 읽다 말다 하다 보니 1년이나 걸렸다.
실제 읽은 시간은 그리 길지 않겠지만, 한번 손을 놓으면 다시 잡기까지 왜 그리 어려운 건지.
읽을 책은 많고 시간은 오래 걸리고,, 이거 참.. 조바심 난다.
아무튼 매번 그러하듯이 책을 읽으면 다음 책을 집어들기 전에 빨리 감상문부터 써야 한다.
안 그러면 까먹으니까.
줄거리를 까먹는 것도 그렇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탁 덮었을 때 말로 설명할 수 없어도
느낀 그 무언가가 날라가 버리기 전에 쓰려고 노력하는데...
과연 이 글은 언제 마무리할지, 참 쓰면서도 자신이 없다 ^^;;;
그래도 시작해 보자.
이번 책은 르 클레지오(Le Clézio)의 아프리카인(L'Africain).

글 쓰는 재주는 여전히 없다 보니 ^^;; 챕터별로 이번에도 쉽게 쉽게 쓰려고 하는데
그전에 전체적으로 느낀 점을 먼저 쓰자면...
굉장히 서정적이고, 아름답고, 그리고 특히 말로는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그리움이 물씬 느껴졌다.
내 부모님, 내 어린 시절 등등...
이 감상문을 쓰는 시점에는 갑자기 내가 어린 시절(국민학교 때..) 살던 동네의 그 풍경, 햇살이 저물어가던 어느 저녁 날 집앞에서 동네 친구들과 어울리던 그때가 떠오른다...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책을 조금이나마 읽어 봤지만,
이 책은 뭔가 또 새로운 시선으로 쓴 것이 느껴져 좋았다.
현지인도 아니면서 외지인도 아닌 사람이 쓴 글이라 그럴까.
책의 앞부분에서는 특히 아프리카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래서 미지의 세계를 방문하는 듯 신기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지만,
읽다 보면, 사실 이 책은 단순한 아프리카 얘기를 넘어서 저자의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리고 아버지의 자취를 따라가며 우리는 저자와 함께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고 직접 느낄 수 있게 된다.

난 사실 아프리카인이 저자의 아버지를 얘기하고 있는 거라는 사실을 책 앞부분에서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저자가 들려주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렇게 나중에 위와 같은 내용을 접하니 깨달음에 무릎을 탁 치게 되더라!
(위 내용은 인터넷 서점에서 발췌해 온 내용..)
이 책을 통해서, 좀 늦었더라도 저자가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마음의 평온을 찾았기를 바라며..
아니, 마음의 평온을 찾은 거라 확신하며..
그럼 이제 챕터별로, 책을 읽으면서 끄적여 놓은 것들을 아래 옮겨 놓아 본다.
그냥 그때그때 읽다가 끄적여 놓아서 글에 두서가 없지만..
그래도 안 적어 놓는 것보다야 낫겠지 싶어서 ㅎㅎ
사실 옮기면서 다시 읽어보고 다듬어 보고도 싶었지만, 요새 눈이 안 좋아서.. ㅠㅠ
아무튼 그냥 가 보자..!
1) Le corps
첫 느낌은 일단 묘사가 굉장히 생생하다는 것.
이 책을 읽는 나는 분명 어른인데, 다시 아이가 되어 아이가 느낀 그대로를 느낄 수 있는 것 같달까.
저자가 묘사한 아프리카 대륙의 그곳들에 내가 가 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여러 책들을 읽으면서 주워들은 게 이제는 있다 보니,
아프리카를 잘 몰랐을 때 읽었다면 그런 생생함을 느끼지 못했었을 것 같아서,
지금 읽어서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L'Afrique, c'était le corps plutôt que le visage. (p.16)
전쟁 동안 프랑스에서 숨어서 숨막히게 살다가 아프리카에 도착한 후,
몸으로 느끼는 그 모든 것. 아름답고 위험한 자연 그대로.
J'ai vécu les moments de ma vie sauvage, libre, presque dangereuse (p.24)
2) Termites, fourmis, etc.
희열에 차올라서 흰개미집을 부순 기억.
흰개미와는 달리 무서운 개미에게 당한 기억.
개미말고도 많은 곤충..바퀴벌레, 전갈..그리고 곤충들의 복수..프랑스와는 대조되는 밤 풍경..
읽고 있으니 모기장 안에서 창밖 덧문에 부딪히는 나방들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 열기가 느껴지는 듯하다.
--여기서 올려 보는 흰개미집 사진 하나..
사람이 옆에 쪼그맣게 나와 있는 거대한 흰개미집 사진도 많던데, 아무튼 혹시 모르니 위키에서 가져옴..

3) L'Africain
아버지는 아프리카 오지에서 군의사로 복무유럽 전쟁 동안에 가족들과 보지 못하고 지냄.
전쟁으로 서로 죽이는 마당에 아버지는 정작 살리는 일을 묵묵히 해냄.
그러나 아버지는 여기에 대해 침묵.
저자가 어렸을 때는 전쟁 때라 남자가 없는, 여자와 노인들만 있는 삶이 평범한 삶 같았음.
Ogoja에서 아버지를 처음 봣을 때 굉장히 낯설음..
Ce n'est pas l'Afrique qui m'a causé un choc, mais la découverte de ce père inconnu, étrange, possiblement dangereux. (p. 52)
굉장히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살다가 엄격한 아버지와 만나니 갖은 충돌이...
전쟁 때문일까, 아프리카 때문일까, 아이들(저자를 포함한)은 아빠를 사랑하기보다는 두려운 존재처럼 느끼게 됨.
이 세 번째 챕터를 마치며 드디어 아프리카인 = 아버지였구나! 를 깨닫게 되었다..
4) De Georgetown à Victoria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아버지 얘기가 시작된다.
아버지는 Ile Maurice에서 태어난 이후 (현지인은 아니고 Bretagne에서 이주한 가족에서)
런던에서 장학금으로 의사 공부를 하다가
Georgetown으로 떠나게 됨 (집안에 여유가 없어서 자금상 개인 의사가 힘들 것이라는 판단 + prétexte à rompre avec la société européenne)
그런데 앞에서도 아프리카만 언급하고 그래서..
Georgetown이 막연히 아프리카라고 생각했는데.. 지리 헛 공부했다...
어느 정도 읽다가 너무 이상해서 찾아보니 Georgetown은 아프리카가 아니구나..;;;
남아메리카에 있는 곳이다. Guyane, 가이아나의 수도로 남아메리카에 있는 곳이다 (프랑스령 기아나 옆)
여기는 영국령이었어서 인도인이 많이 유입되었다.

여기서 추가해 보는 조지타운 위치.. ^^; (구글 맵)
아버지는 가이아나에서 이후에는 서아프리카로 이동하는데,
아버지가 했던 그 여정을, 그 자취를 아들(저자)이 따라가면서 아버지를 서서히 이해해 나간다.
이처럼 다른 세계로 여행을 떠났을 때야 비로소 아들도 아버지가 느꼈을 감정을 깨닫게 된다..
가이아나에서의 일들은 산책처럼 오히려 가벼웠고,
아프리카에 있는 동안 질병, 부족한 약, 방대한 관할 구역 등등.. 서서히 힘에 부쳐 간다...
(d'abord) l'amour et l'aventure
... puis la solitude et l'angoisse de la guerre, jusqu'à l'usure, jusqu'à l'amertume des derniers instants (p.64)
아버지가 나중에 아프리카를 떠나 유럽에 돌아와서도
아프리카에서 사용했던 빛바랜 별것도 아닌 물건들을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소중히 간직했다.
- 마치 마음만은 그때의 아프리카를 떠나지 않은 것처럼...
외과용 수술 도구를 주방에서 사용하시기도 하고 ㅎㅎ
아무튼 그렇게 아프리카에서의 습관을 유지하셨다. 꼼꼼함. 작은 것 하나하나에도.
C'est ainsi que je le vois à la fin de sa vie. Non plus l'aventurier ni le militaire inflexible. Mais un vieil homme dépaysé, exilé de sa vie et sa passion, un survivant. (p.67)
처음 아버지가 보았을 아프리카는 전형적인 식민지하,
마치 유럽의 연장선(extension) 같았다고 할까?
백인들을 위한 곳이 생기고(zone propre, luxe, privilégiée)
-> 그다음에는 유럽인화된 현지인들 (백인을 위해 일하는)
-> 그리고 그 외곽에는 무수한 아프리카인들...
아마 아버지는 거들먹거리는 백인 사회가 싫었을 것이다..
참, 어머니는 아버지의 cousine germaine이었는데,
** 책 내용과는 별개로 좀 추가하자면:
cousin germain은 아버지나 어머니의 형제자매의 자녀, 즉 할아버지가 같은 사이이고,
프랑스에서 cousin germain 사이의 결혼은 법적으로는 허가가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아마 교회에서는 특별히 허가 받지 않는 한 안 되는 듯?)
남편이 어렸을 때 누군가가 "쟤는 나의 cousine germaine이야."라고 해서
사촌 이름이 Germaine인 줄 알았다고... 나중에 알고 보니까 cousin germain이 한 단어였다고..
아무튼 이 이야기를 들은 후 이제는 낯설지 않은 단어 ㅎㅎ
다시 책 내용으로 돌아와,
아프리카 사람들은 야만인이 아니냐는 다른 사람들 반응에 어머니가 대답한 것:
Ils ne sont pas plus sauvages que les gens à Paris!
파리 사람들보다 더 야만적이진 않아!
정말 수긍했던 그 대답 ㅋㅋ
같은 프랑스인들도 지방에서는 파리 사람들 무서워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ㅋㅋ
부모님이 아프리카에서 살며 구매한 가구들은 부모님을 따라 어디든 함께 이동했고,
나중에는 물론 프랑스까지 가져온 그 가구들 한가운데서 저자는 자라나며,
따라서 그런 아프리카식 가구들이 저자의 눈에는 전혀 이국적인 게 아니었다.
그런 아프리카식 가구, 장식 등등은 그곳에서의 부모님의 삶을 들려 주는 것들.
즉 그(저자)에게는 quelques choses vivantes - 무언가 살아 있는 것들이었고.
그러나 어떤 이에게는 아트art라고 불리는 그냥 죽은 껍데기(la peau morte)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됐을 때, 놀라움과 분개의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아무튼 이 챕터에 나온 자연은 굉장히 생생했다..
un endroit presque vierge (p.71)
..retrouver quelque chose de l'innocence perdue (p.71)
++ 그리고 70페이지에 언급된 André Gide의 "Voyage au Congo"도 언젠가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
메모. 메모.
5) Banso
이제 아버지는 추억이 가득했던 위 4장의 첫 집을 떠나, 병원이 지어질 고지대 Banso로 향하게 된다.
아버지가 담당하게 될 구역은 무척이나 방대했고,
아버지는 직접 지도를 만들었다 - 거리는 km가 아니라, 몇 날, 몇 시간을 걸어야 갈 수 있는지로 표시가 되었다.
(이러한 부분에서 왠지 아프리카 오지를 돌아다니던 비라고 디오프가 떠올랐다... 물론 수의사이긴 했지만 )
책의 제일 앞머리에 들어 있는 Banso의 지도
책에 들어 있는 사진들 다 좋았다

사실 이번 장에서 묘사되는 아프리카는 너무도 아름답고 경외적인 것만 같아서..
이것도 오리엔탈리즘의 일종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의문도 던져 보았는데
(이런 의문 자체가 너무 삐딱한 시선일까? ^^; )
그런데 그곳에서 직접 오랫동안 일생을 보낸 아버지의 애정이 너무나도 느껴져서
그건 전혀 아닐 거라는 대답을 스스로 내놓을 수 있었다..
아무튼 저자도 아프리카에서 어머니와 행복한 한때를 보내던 아버지가 느꼈던 것들을 자신도 사진과 자신만의 경험을 통해 직시하고 있는 듯하다..
Mon père et ma mère y ressentent une liberté qu'ils n'ont jamais connue ailleurs. (p.83)
Afrique à la fois sauvage et très humaine (p.89)
6) Ogoja de rage
그러나 그런 깊숙한 아프리카까지도 전쟁이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전쟁 전의 아버지와 전쟁 후의 아버지는 전혀 다른 사람.
(* 여기서 전쟁은 2차 세계 대전)
아프리카를 son pays d'adoption (그를 입양한 국가)라고도 표현했었는데.
..comme si tout ce passé avait disparu. C'est donc la guerre qui a cassé le rêve africain de mon père. (p.94)
어머니는 출산하러 프랑스로.
아버지는 다시 아프리카로.
그러나 그사이에 발발한 전쟁, 자유롭던 아프리카는 마치 덫과 같았다.
어머니, 자식들에 대한 소식은 더 이상 들을 수 없었고, 어떻게든 프랑스로 가 보려 했지만 다시 잡혀 돌아가야만 했던 아버지...
A partir de cet échec, l'Afrique n'a plus pour lui le même goût de liberté. (p.97)
전쟁 동안 가족들의 소식 없이 그렇게 긴 시간을 홀로 살게 된 아버지.. 일에만 집착하게 된다.
예전에 그토록 가깝게 느꼈던 아프리카인들이었는데,
사실은 자신과 같은 유럽인 의사도, 아프리카인들의 눈에는 경찰이나 군인처럼 한낱 식민 지배인의 일부에 불과한 것이라는 걸 비로소 알게 된다...
전쟁으로 인한 이런 고립이 아버지를 특히 더 염세주의자로 만들었다..
다시 해야 한다면, 의사보다는 수의사가 되고 싶다고..
(- 또 여기서 떠오른 생각은, 비라고 디오프는 수의사였기에 인간애를 잃지 않았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 )
게다가 이곳 Ogoja는 폭력적인 일면도 많았다.
부족 간 전쟁, 식인에 대한 루머, 살해된 시체들의 부검...
Ce métier qu'il a exercé dans l'enthousiasme devient peu à peu accablant, dans la chaleur, l'humidité de la rivière, la solitude du bout du monde. (p.102-103)
Quel homme est-on quand on a vécu cela? (p.104)
7) L'oubli
1948년에 내가(저자가) 만난 아빠는 이런 상태였던 것이다.. 이방인, 적(ennemi) 같은 느낌..
Banso, Bamenda에서 행복했던 아버지, 그러나 바로 그 같은 대륙이 가족과의 삶, 사랑을 빼앗아 갔다.
저자는 당시 아빠를 이해하지 못한 것을 후회할지 모르지만, 8살 소년이 어찌 이해할 수 있었을까.
갑자기 아버지란 사람과 만났고, 그는 엄격하기가 그지 없었다.
아프리카에서 보낸 22년의 세월은 식민이라는 것에 대해 아버지의 마음 속에 증오를 심어 놓는다.
그리고 아버지는 서구의 영향, 근대화로 예전의 가치를 잃고 변화하는 아프리카를 보게 된다..
La guerre civile devient une affaire mondiale, une guerre entre civilisations. (p.115)
(-- 갑자기 이 부분에서는 책의 분위기가 역사 이야기를 들려 주는 쪽으로 바뀐 느낌이었다 ^^;; )
또한 참혹한 나이지리아의 비아프라(Biafra) 전쟁.
자신이 인상 깊었던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 이제는 전 세계에 슬픈 이미지로 보여지게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 비아프라 (출처: 위키 백과)
비아프라(Biafra) 또는 비아프라 공화국은 1967년에 나이지리아의 남동부의 동부주가 분리독립을 선언함에 따라 수립된 이그보(Igbo, 이보 Ibo)족[1]을 주체로 한 국가이다. 1967년 5월 30일부터 1970년 1월 15일까지 존립했다.
이그보족에 의한 분리 독립 운동은 나이지리아의 여러 민족간에 존재하는 경제적, 민족적, 문화적, 종교적 긴장때문에 발생했으며, 국가명 비아프라는 대서양과 접한 나이지리아 남부의 만인 비아프라만(보니만)에서 가져온 것이다. 분리독립운동은 나이지리아 내전(內戰)에 한 원인을 제공했으며, 동(同)내전은 달리 나이지리아-비아프라 전쟁으로 불리기도 한다.
-- 본문(p.117)에 소개된 치누아 아체베의 시 "Noel au Biafra"도 다시 찾아 읽어 보고 싶다.
아무튼 저자가 어린 시절 아프리카에서 느꼈던 자유, 경험은 그의 안에 여전히 살아 있다.
그리고 그는 이 글을 쓰며 이해한다. 그러한 기억은 저자만의 고유한 기억이 아니라, 저자가 이미 태어나기도 전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기억이라는 것을.
아프리카에서는 잉태됐을 때부터 삶이 시작된다..
C'est en l'écrivant que je le comprends, maintenant. Cette mémoire n'est pas seulement la mienne. elle est aussi la mémoire du temps qui a précédé ma naissance, lorsque mon père et ma mère marchaient ensemble sur les routes du haut pays, dans les royaumes de l'ouest du Cameroun. (p.122-123)
아무튼 그랬다, 아프리카인이 된 아버지.
내가 잉태된 순간, 내가 태어난 순간 나를 안아 주던 아프리카인 어머니.
L'Africain.
# by | 2021/07/08 23:05 | 독서 Bonne lecture | 트랙백 | 덧글(0)